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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인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집...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7.15
첨부파일1
추천수
0
조회수
2197
내용
○ 3녀 1남을 둔 엄마가 2005년 3월 5일 새벽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그때 연세가 66세셨다. 쓰러져 있는 엄마를 너무 늦게 발견한 탓일까? 1년을 꽉 채워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의식 없는 상태로 지금까지 5년째다.
1급 등급판정을 받은 엄마는 올해 3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인 재가보호서비스를 받고 있다. 그 덕에 무겁고 크기만 했던 간병비의 부담에서 벗어나 엄마를 돌보고 있다. 더 일찍 이 제도를 알았지만, 엄마 같은 환자에게 환경 변화는 큰 모험이자 죽음을 각오한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꽤 많은 돈이 들었지만, 4년을 넘게 해왔던 개인 간병인의 간병 환경을 그리 쉽게 바꾸지 못했다.
허나, 많은 우여곡절 끝에 방문요양과 방문간호를 신청했던 우리의 결정은, 지금 엄마와 가족들 모두에게 정말 잘한 일이 되었다. 또 이 제도가 오랫동안 아픈 병자와 그 병자를 돌보는 가족에게 얼마나 큰 위안과 위로가 되는지 꼭 말하고 싶다.

수년간 함께했던 간병인이 그만둬 더 이상 어찌해볼 방법이 없어 막막할 때, 이젠 끝이라고, 더 이상 길이 없다고 했을 때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를 만났다. 정말 이 제도는 한 생명을 정성으로 보살피고 싶었지만, 너무 힘들고 지쳐 더 이상 돌볼 수 없다 생각했던 우리 가족에게 희망을 선물해준 도구였다.

- <‘지못미’가 아닌 ‘보못미’, 글:권미경, 최우수상> 중에서



○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나무로 만든 계단이 있었습니다. 계단에 첫 발을 내 딛는데 고약한 냄새가 코를 엄습해 왔습니다.

두 세평 남짓한 방 안에 초췌한 모습의 할아버지가 누워 계셨습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 쾡한 눈, 남루한 병원복, 배꼽에 연결된 소변줄(유치도뇨관)에는 붉은 색을 띤 오줌이 고여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다리는 무릎과 발목 관절이 굳어진 듯 뻣뻣해서 전혀 거동을 못하셨고, 양손 손가락들도 굳어져 있어서 흘러내린 옷조차 당신 스스로 치켜 올리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방안에는 먹다 남은 음식과 지저분한 그릇, 말라비틀어진 일회용 물수건 , 지저분한 옷가지, 소변이 가득 담긴 쓰레기통, 등이 널려 있었고 온갖 악취가 등산 했습니다. 그곳에는 옛날 다락방의 추억을 더듬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고 오직 더러움과 악취만 가득한 공간 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요양보호사 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할아버지 돌보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할아버지의 열악한 다락방 환경은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요양보호사들이 모두 거절 하고 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해 졌습니다.

3개월이 지나면서 요양보호사와 방문간호사의 도움으로 건강이 많이 호전된 할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구청과 중소상인지원센터에 찾아다니는 것이 할아버지 하루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장애인 등급도 있으셔서 장애인 사업자에게 대출해주는 돈을 받아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제 무더운 여름이 다가 오면 슬레이트 지붕이라서 다락방이 엄청 더울 텐데 할아버지가 어떻게 여름을 지내 실지 걱정을 태산같이 하는 요양보호사님,선생님의 따듯한 마음씨에 힘입어 우리 할아버지가 다락방에서 하루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습니다.

‘요양보호사에게는 어르신의 과거를 보는 눈은 없습니다. 오로지 현재와 미래의 어르신 아픔만 바라보는 눈을 가졌답니다. 마음이 通 하는 門 孝子門의 생각입니다.’

- <할아버지와 다락방, 글:박춘화, 우수상> 중에서



○ 예전부터 현재 시행되고 있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정책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시어머니께서 2003년부터 치매라는 병을 얻어 다시금 고단하고 힘든 시련이 시작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2004년 간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 했을 때 눈물을 머금고 시어머니 방문을 잠그고 병원과 집을 하루 세 번씩 오가며 두 분을 간병했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저년은 어디 돌아다니면서 밥 늦게 준다고 야단을 하시니 죽을 만큼 몸은 지치고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 남몰래 서럽게 울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 였고 전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 였습니다.
시어머니 병세는 점점 악화되고 남편은 2-3개월 사이에 항암치료 12번을 하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2006년 5월에 재 수술 중 사망 하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시어머니의 병세가 더 악화되면서 치매와 노인성 질환이 겹치며 누워서 생활 하게 되었습니다.
당 95세로서 2008년 2월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때 당시에 노인 장기 요양보험 제도가 있었다면 요양 보호사께 시어머니 맏기고 남편 간호를 조금 수월하게 나누어 할 수 있어서 두 분 모두께 좀 더 잘해줄 수 있었을 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저는 앞에서 본 것처럼 어려운 체험이 있었기에 2008년 4월 1기 요양보호사 교육 수료후 7월달에 재가 장기요양기관에 입사하였고 친정어머니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남에게도 봉사를 하는데 내 부모는 내가 모셔야 되겠다 결심이 서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만약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없었다면 여유롭지 못한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나 역시 어머니를 모시지 못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려운 체험이 있었기에 노인 장기요양보험이 얼마나 위대하며 고마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 그 보답으로 더 열심히 봉사 하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노인들을 짐짝 취급하던 예전과 달리 어른으로 대접을 해주는 진정한 가족 사랑의 실천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요양보호사 직업은 너무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황혼을 맞은 어르신들에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봉사를 해 드릴 수 있고 현재는 우리가 젊지만 노인이 되었다고 가정을 하면 지금 어르신들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결론이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항상 어른을 공격하는 마음이 있다면 좀 더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 <효도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글:여명자, 우수상> 중에서



○ 노인장기요양보험이 7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논산운영센터 문을 빼꼼히 열고 “죄송합니다. 좀 도와주세요.”하며 한 왜소하여, 유리문을 여는 게 버겁게 느껴지는 할아버지께서 들어오셨다.
노인장기요양보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 드리고 신청 및 등급판정 진행 절차를 안내하자 “그러니까, 이게 보험공단에서 하는 일이구먼?”하시며, 안심하는 기색을 비치시고는 신청서 작성을 하고 “잘 부탁혀. 고마워.”하며, 집으로 돌아가셨다.
삼일 후 유선으로 방문시간을 약속했다.
할아버지 뒤에 어떤 사람이 귀신처럼 서 있었다. 바로 대상자인 할머니였다.
불편한 팔 다리로 마당과 방을 맨발로 들락거리는 할머니 때문에 방에는 흙이 잔뜩했다.
의료급여자로 정부지원금이 나오고 있고, 병원비 감면혜택이 있어 그나마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고 하신다.
등급판정위원회의에서 최종적으로 2등급으로 결정되었다.
장기요양인정서를 가지고 다시 방문하여, 의료급여자이므로 시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과 희망에 따라 재가급여 이용시 7.5% 본인부담금에 대한 설명을 하자 비용문제로 한참을 망설이셨지만, 결국 재가장기요양기관과의 상의 끝에 표준장기요양이용계획서대로 방문요양 주 2회 (150분 이상~180분 미만), 방문목욕 월 3회(차량이용) 이용하기로 결정하셨다.
방문요양을 제공받은 다음 날 어르신을 다시 찾아뵈었다. 몰라보게 깔끔해진 집모습에 놀랐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밝은 얼굴에서 하늘이 맑고 맑은 빛을 쏟아내고, 바람결에 꽃향기가 가득하던 어느 봄. 그 봄이 다시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 <봄이오는 소리, 글:유혜정, 우수상> 중에서


○ 가정의 달 오월 노인 장기요양보험 체험수기 공모를 보고 문득 부모님이 떠올랐다. 바쁜 생활 속에서 적당히 잊고 지낸 부모님의 얼굴. 나의 부모님이 생전에 계실 때엔 사회복지라는 것이 생소했던 시절 사회적 제도가 없었기에 어떠한 경우이든 집에서만 모셔야 하는 상황 이었다. 자식들이 모든 걸 접어두고 달려가 모실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기에 나의 어머니는 외롭고 쓸쓸하게 사람을 그리워하다 여생을 마감하셨다.
자식은 섬기려 하여도 부모는 기다리시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뼈에 사무치는 말이 되어 버렸다.
요양보호사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3월 가까운 지인의 소개로 학원에 등록을 하게 되었다. 공부를 하고 실습을 마치고 요양보호사 업무는 시작되었다.

‘어린아이 너무 나무라지 마라’ 내가 걸어왔던 길이다. ‘노인 어리석다 책망하지마라’ 내가 갈 길이다. 나는 요즘 나의 미래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로 배우며 정말 비우는 삶 나누는 삶 함께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노력한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요즘은 더욱더 아름답고 가을에 수확할 야콘이 쑥쑥 자라고 있다. 상추 고추 감자 호박 할머님들이 드실 맛좋은 야채들은 서로 키 재기하며 자라고 할머님들 또한 여전히 흥얼거리는 노래 속에 즐거운 하루가 지나간다.
이렇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우리 할머니들은 숲속의 공주들이시다.

- <숲속의 공주님, 글:이명애, 장려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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